에고는
나 자신은 물론 만물과의 관계에서
내가 반응하기로 선택하는 매우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니 에고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건
삶을 놓고 시비를 가린다는 뜻으로
스스로 이분법에 빠져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순간
타인의 삶도 부정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
내가 나 자신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자극에 반응하기로 선택하는지를 살피면
내가 만물과 타인을 향해 어떻게 반응하며
관계 맺기로 선택하고 있는지 저절로 알아진다.
왜 그런 특정한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방식에 익숙해져버렸는지를 특히
그 방식의 그림자 혹은 어두운 부분을
자비의 마음으로 스스로 끌어 안으면서
익숙한 방식에서 낯선 방식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나를 돕는 모든 행위가 변화와 성장에 의도를 둔 치유이다.
따라서 치유의 과정은 이미 익숙한 방식은 물론
낯선 방식에 대한 일차적인 수용과
이를 부단히 연습하는 과정을 거쳐
다양한 방식을 쓸 수 있게 되는 삶을 지향한다.
치유하면 삶에 유능해지는 이유다.
십일면천수관음은 삶에 매우 유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렵다 느끼는 순간을 피할 순 없겠지만
그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어려울 때 쓸 수 있는 반응 카드가 매우 다양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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