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 때에는
바닥에 박혀 있는 빨래댓돌 옆에 쭈그리고 앉아
3년에 한 번씩 편지며 추억들을 태웠다.
그러고나면 시원했다.
그런 나를 돌이켜보면
어린 게 뭘 아느냐 소리 함부로 할 게 아니다.
내게서 겨우 한 송이인데 온통 한 송이 같은
꽃을 보았노라고 한 친구 집에서 어제 밤
오랜 만에 회동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당 있는 집 찬스를 잡았다.
30년 쯤 묵은 편지 두 박스를 들고가
동행한 친구가 쓰레기장에서 주워다 준 작은 냄비에
조금씩 태우기를 한 시간 반
친구가 마당 어딘가에서 들고 온 낫이
내 손을 대신해 뜨거운 불 속을 뚫고 다니며
산소를 불어넣어주지 않았으면
세 시간이 걸렸을지도
불이 피우는 아름다운 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편지에 있던 이들에게는 남은 여정의 평안을
사람들 속에서 생겨난 제 3의 존재 ‘관계’에는
안녕을 고했다.
온 몸, 세포 하나 하나가 감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이 날은 병오(丙午)일이었다.
'둥그내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평화로워요 (0) | 2021.09.21 |
---|---|
모두가 부처, 모두가 신 (0) | 2021.08.27 |
꽃 보면 설렌다고 (0) | 2021.08.25 |
엄마 손은 약손 (0) | 2021.08.11 |
삼복 더위 보내는 법 (0) | 2021.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