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6월 28일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
미용실 가기 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숏컷'을 찾기 위해 검색하자
다양한 종류의 이미지가 떴고 모두 여자였다.
헤어컷을 위한 검색은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중 어느 것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남자 숏컷'을 검색하니 원하는 스타일이 나왔다.
헤어 디자이너에게 그 이미지를 보여주자 그녀가 묻는다.
"그 왜.. 도자기 굽는 영화.. 그 여자 주인공 스타일은 어떠세요?"
"아,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 스타일요?
그거 작년에 제가 처음 컷할 때 해주셨던 스타일^^
저 삭발하고 싶을 때 가끔 있었어요.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는 게 성가셔서."
'삭발' 소리에 디자이너가 내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자, 이제 자릅니다."
빗으로 옆 머리를 밑에서 빗어올리더니 바리깡으로 스윽 밀자
머리털이 한 움큼 툭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고요했던 마음에 작은 돌맹이 하나가 통..하고 떨어진 느낌
묘한 슬픔이 10분간 지속되다가 시원함이 밀려오며 사라졌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내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며
그동안 머리카락으로 나의 여러 컴플렉스를 가려왔다는 것
나의 그 새로운 얼굴에 나 역시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다는 것이 알아졌다.
발레를 처음 배우러 다니던 30대 초반
선생님이 몸에 짝 붙는 레오타드를 반드시 입고 오라고 했다.
그래야 자세며 동작을 선명하게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처음 그 복장으로 무용실에 들어갔던 날 거울을 똑바로 보기가 좀 힘들었다.
불룩한 허벅지, 처진 엉덩이, O자로 휜 다리 등등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
시간이 흐르고 몸의 라인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에 더 몰입하게 되면서
거울을 뚫어져라 보는 게 비로소 가능했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아가던 과정이었고
내 신체에 대한 나 자신의 컴플렉스를 어느 정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사회적 통념 속에 여과 없이 나를 노출한 세월이 길었다.
가려줄 머리털이 없으니 그때처럼 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무런 구박도 하지 않고 비대칭인 부분은 한 번 더 쓰다듬으며 치유한다.
남자 아이로 오해받았던 어릴 때 모습이다.
여자 아이들에게 연애 편지를 받아 당황했던 중1 때 모습이다.
화장 안 하고 긴 머리 질끈 매거나 비녀 대충 꽂고 살다가
커플 댄스 배우면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길러 구불구불 파마를 하고 다니던 때가
'나도 여잔데..' 하는 마음이 강하게 밀고 올라왔을 무렵이다.
홀로 애쓰며 사는 것 같은 마음에 고단함이 올라와
사회적 통념 속 '약한 여자' 탈 뒤에 숨으려고 했던 게 알아졌다.
리더 역할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경고등이 켜졌던 마음도 알아졌다.
팔로워 역할을 오래 하는 동안 자기 중심이 없으면 팔로워도 잘 할 수 없음이 알아졌다.
여성과 남성을 분별하고 고정된 관념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치유하면서
내 스스로 다른 이성에게 투사했던 나의 남성성을 거두어들여
내 안에서 통합하고 있음을 느낀다.
검색해서 찾은 '남자 숏컷'을 하고 그 날 저녁 왈츠를 즐겼다.
머리털이 잘려나갈 때 잠시 동안 느꼈던 슬픔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어떤 플레이'에 대한 이별, 애도의 감정
그 감정 위로 가벼운 단단함이 올라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게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왈츠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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