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가지 않는 가정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가족구성원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힘으로 살아남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쓴 감정이 '연민'
소위 측은지심이라는 연민의 힘을 타인에게 쓰며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연민도 베풀지 않았다.
자신을 연민할 줄 모르는 아이의 에너지가 채워질 리 없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가족을 연민으로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다가
감당할 수 없는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서 공포가 차오르는 순간
가랭이가 쭈욱 찢어지며 나자빠질 때 올라오는 아이의 감정은
가족들을 향한, 어른들을 향한 혐오
이 양 극단을 오고가며 아이는 점차 자기연민에 빠져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잃은 채 나이를 먹어갔다.
아이가 관계를 맺는 패턴은 이렇게 굳어져갔다.
성인이 된 내가 관계를 맺는 패턴 역시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에세네라는 치유공동체에 와서까지도.
작년에 EPT 멤버들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여러 질문들에는 큰 무리없이 대답을 이어가다가
'공동체에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에는 사전에 질문지를 읽어보았을 때도
인터뷰 당일에조차도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 상황이 나의 패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을 말할 수 있어야 공동체의 발전에도 뭔가 기여를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빛만 보려고 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도 그림자를 편히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위선이다. 그리고 이 위선의 끝은 결국 또 혐오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또 다시 내가 혐오 감정을 쓰게 될 거라는
위기감과 절박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알아주어야 해!
에너지 고갈 상태로 이렇게 마구 달려나가다가
또 다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게 되면 어떡해 ㅠㅠ
생각만 해도 싫어!'
그동안 나의 가족 구성원들이 지닌 각각의 빛과 그림자를
그냥 볼 수 있기 위해 나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었듯이
이제 이 공동체의 빛과 그림자를 아무 분별없이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이 공동체에 들어와 겪은 일들에서 발생한 나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알아주는 과정을 거치기로 선택한다.
참여자였을 때 내가 묻어둔 나의 감정들
힐러로서의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내가 느낀 감정들
그 모든 감정들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시간들을 거쳐야 비로소
나는 건강한 수치심을 통해 참되게 반성하며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성장을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지, 애쓰지 않고 위선 없이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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