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에게나 삶의 상흔이 남는다.
상처를 주고 받는다.
예외가 없다.
받았다 느낄 때 피해의식이 생기고 주었다 느낄 때 죄책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때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들이 있다.
이 감정에 너무도 익숙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그 감정에 중독이 된 상태
중독이란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점점 더 강력한 것을 원하게 한다.
피해의식과 죄의식 사이를 오고 갈 뿐 정작 그 개미지옥 같은 궤도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궤도 안에 머무는 동안 발생하는 감정이 불러오는 은밀하고 비극적인 쾌락이 있기 때문.
막장 드라마든 소위 예술 영화든 스토리 속 비련의 주인공을 향한 인기는
피해 의식이 불러오는 집단적인 감정 쾌락을 방증한다.
피해 입은 사실은 그 사실대로 그대로 수용하되
피해 '의식'으로 굳어진 중독적 관념들에 치유적 전환을 일으키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주변에 생긴 관계들 역시 나의 관점 전환을 적극 돕는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거칠게 때론 섬세하고 날카롭게.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는 정도만큼 죄책감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이 길에 있기까지 매순간 내가 선택했음을 받아들인 만큼
타인도 그 길에 있기까지 매순간 그들이 선택했음을 존중하게 되기 때문.
타인의 여정을 존중하기로 선택하는 순간마다 역시
주변에 생긴 관계들이 내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론 오지랖을 호통하고 때론 달의 이면에 있던 정보를 알려주면서.
어제...
몇 년 동안 지속되었던 나의 죄책감 뿌리 하나가 쑤욱 뽑혀나갔다.
자신을 피해자 위치에 두기 위해 그녀가 써내려갔던 비극적 스토리에
누군가 얹어준 정보를 포개고 보니 그녀가 자신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스토리에서 무엇을 의도적으로 편집해왔는지 드러났다.
그림자만 강조되던 그림에 빛이 들어오며 나는 기분 좋은 해방감을 느꼈다.
내가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땐 그런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내가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땐 그런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나의 그 의식의 뿌리인 비극적 감정의 쾌락을 위해 상대를 계속 대상화시키고 소외시킨다.
존재로서 그냥 보고 존중하지 못한 채 내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쓰일 조연이자 도구로 대하기 때문..
어떤 상황에서든 조건에서든 대상으로 취급받을 때, 마땅히 존중받지 못할 때
영혼은 상처를 입게 되지 않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경험으로 체화한다.
나는 나에게 전해진 피해자 의식, 죄의식의 뿌리인 중독적 감정으로 들어가
스스로 치유하여 나를 돕기로 선택한다.
하늘은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나를 돕는다.
다만 내가 나를 돕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하늘이 나를 돕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감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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