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로서의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절감하게 되는 게 있다.
치유는 역시 셀프라는 점
레이키 동조든 DNA힐링이든 아무리 진화한 힐링테크닉을 힐러가 안내한다고 해도
그 에너지의 작용이 일어나게 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열쇠는
오직 참여자나 클라이언트가 쥐고 있다.
깊은 상처로 굳건하게 닫아버린 가능성의 문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열기로
참여자나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힐러가 도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공감과 지지를 통해 한 겹 한 겹 쌍방간 신뢰의 경험을 쌓는 것
열고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두려움과 공포로 굳게 닫은 문을 열기란 그만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고
그 문에 부드럽게 노크하며 신뢰를 쌓아가야할 모든 책임은 돈을 받은 힐러에게 있다.
그것이 명백한 계약 사항이다.
힐러가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며 먼저 치유해내지 않으면
계약에 따른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회피하게 되어 있다.
나 역시 그랬음이 알아진다.
부끄럽지만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 정리해본다.
상대가 쏟아내는 부정적인 감정에 위축되고 매몰된 순간 죄책감에 잠식되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힐러로서의 책임감’이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채 가르치려 들었다.
더 이상 경청하고 공감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상대는 힐러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리고 기분이 고약해진다.
힐러가 떠는 위선을 에너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힐러에게 상대가 분노를 표현한다면 그나마 내적인 힘이 있다는 뜻이다.
매우 취약한 상태라면 자신이 애써서 용기내어 한 표현에 눈물 흘리거나 위축된 힐러를 보며
스스로 뭔가 잘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고 그로인해 죄책감이 생겨
상대는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된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고통을 치유하고자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은 대리 부모 힐러에게조차
깊이 상처입고 절망한 채 돌아서게 된다.
힐러가 사기꾼 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가족 구성원들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며 성장한 참여자나 클라이언트는
가족들의 감정을 흡수한 채 살아남게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감정에 동화된 상태와 공감하는 상태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지점이다.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참여자나 클라이언트는
힐러의 아픔이나 고통에 쉽게 동화되어
자신의 것도 아닌 힐러의 감정의 파고를 고스란히 함께 겪게 된다.
치유하러 와서 성장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또 다시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줄줄 새는 부모’ 같은 힐러는 치명적이다.
나의 모친은 나에게 줄줄 새는 엄마였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줄줄 새는 엄마였다.
나는 내가 그런 엄마인지도 몰랐었다.
나는 어쩌다가 그런 엄마가 되었을까.
나는 어린 시절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어른들이
자신의 역할은 성숙하게 해내지 못하면서 지위만을 고집하고 주장하는 모습에
아주 오랫동안 환멸을 느껴왔다.
나의 이 환멸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을 키웠다.
나의 이 그림자 반대편에서 자라던 게 바로 ‘대등한 관계에 대한 열망’이었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돌봐온 대상은 당연히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대등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권위를 내세우며 부모와 자식이라는 고정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이 관념에 사로잡혀 나는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가 되었다.
긍정적인 면도 물론 있었지만
돌봄을 받아야할 아이들이 엄마의 감정까지 끌어안게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부모와 어린 자식 관계에서 당연히
부모는 돌보는 자이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는 자이다.
육체의 돌봄은 물론이고 감정적 돌봄까지 포함하여.
권위적인 어른들에 대한 혐오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로 했던 나는 그 신념에 빠져
돌봄 받아야할 아이들을 돌보아야할 나의 위치로 끌어올려
어느새 은근슬쩍 경계를 침해하며
자신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르는 ‘줄줄 새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돌봄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또 어느새
힐러로서 참여자나 클라이언트의 경계를 침해하고 있었다.
나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대등한 관계를 내세워
돌봄을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한 그들에게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사실상 계약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사기꾼이 되는 아찔한 순간들..
돈을 받은 자로서의 책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계약한 자로서의 책임 앞에
나의 치유되지 않은 모든 상처와 취약점들을 늘어 놓는 것은
멋지게 포장하면 할 수록 더 구린내가 나는 변명들일 뿐이다.
이 한계 많은 힐러를 견뎌내며 동행해주신 그리고 동행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과 깊은 감사가 동시에 올라온다.
더 부지런히 나 자신을 치유하며 앞으로 한 발 한 발 딛는 것만이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준 그분들의 신성과 빛의 마스터들께
나의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책임 있는 창조에 대한 몇 달 간의 묵상 결과이기도 하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은 덕이 아닌 듯 하나 덕이 있고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써서 덕이 없다.
- 노자 도덕경 38장 上德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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