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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땅이 알고 하늘이 알고

둥그내 2022. 1. 19. 19:17

10살에 저에게 태양 같은 존재였던 부친 돌아가시고 일어난 여러 학대 상황에서 학교 앞에서 사와 정 주고 기르던 병아리가 중닭이 되었을 때 가부장제 신념을 그대로 대물림한 모친이 어느 날 귀가한 저에게 그 닭을 쥐가 물어갔다 하고는 삼계탕을 끓여 큰형부에게 대령했습니다. 큰형부가 닭다리 하나를 찢어 저에게 건넬 때 그 닭이 어떤 닭인지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토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후로도 쭈욱 삼계탕을 못 먹었습니다.

몸져 누워 계시던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6개월 정도 지난 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일주일 넘게 앓았어요. 제 이야기를 듣고도 까맣게 잊은 전남편이 저 먹이려고 삼계탕을 사다 놓았고 아비 출근 후 그걸 아들이 데워 배드트레이에 동치미 한 사발과 함께 먹고 기운내라 갖다주었어요.

그날 삼계탕과 화해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일 거에요. 음식자체가 아니라 음식에 담긴 에너지를 먹기 시작한 게.

딸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아직도 모르는, 삼계탕을 끓여 딸의 분노의 대상에게 홀랑 바친 모친의 가부장제적 폭력을 저는 여전히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부장제에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을 겨를조차 없이 자신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살아남은 모친의 가여운 내면아이는 연이 닿을 때마다 가만히 안아줍니다. 마치 저를 안아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보호자를 신뢰할 수 없어서 스스로 보호자 역할을 해버리며 성장한 게 우리 두 사람의 공통된 스토리겠죠.
둘 다 보호받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라이프레슨 목록 어딘가에 ‘받는 법을 배우러 옴’이 땅땅땅 적혀 있는 거 같거든요. 그게 좀 익숙해지면 신성의 보호에 대해 좀 더 신뢰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늘 순진무구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셔서 배움이 큽니다. 감사합니다_()_

- 동행 중인 분께 띄운 글 -

매일 화상 통화를 걸어오는 모친이 간혹 거르는 날이 있다. 엄니에게서 대물림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만나 맹렬하게 치유하고 있을 때..

분노를 돌보고 화해하고 나서야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내가 알고 엄니가 알고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것이다.
함께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