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My Way Home 집으로

몰라서 재밌다

불확실성을 가능성으로 본다, 뻗어나간다

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상처 입은 똑똑한 아이가 리더 역할에 중독된 과정

둥그내 2021. 4. 26. 17:19

10살에 아빠를 갑자기 잃고 그 바람에 함께 살게 된 조카들에게 엄마 품까지 동시에 뺏긴 저는 어느새 저만의 공간으로 걸어들어가 문을 잠갔던 것 같습니다.  그 공간 바깥에는 어른들의 온갖 분별로 이루어진 견고한 미로가 있었어요. 너를 할 수 없이 낳았다, 아들이길 바랐는데 또 딸이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순결을 잃으면 끝이다, 절대 민폐 끼치지 마라, 언니처럼 상업 고등학교 나와서 얼른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촌지도 못 주는 가난한) 집 애가 우등상을 받냐, 아빠가 없어서 그런가 얼굴에 그늘이 있어, 약속을 어기면 절대 안 돼, 사람이 한 번 말한 건 꼭 지켜야지 등등등..

 

제가 그 미로를 일일이 통과하지 않고 단숨에 그 공간 속 내면아이에게로 가는 몇 가지 방법이 노래하기, 잠자기, 공상하기였던 거 같아요. 조금 커서는 글자와 사귀고 만화책, 드라마, 영화를 통해 저를 만나러 그 공간으로 갈 수도 있었어요. 그 가상의 세계에서는 숨을 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미로 위를 날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관계를 맺을 때는  늘 힘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갈 수록 저 미로들을 견고하게 만들면서 그 미로를 헤매다니는 동안 점점 지쳐갔거든요. 그런 저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조금 잘 했더니 반장, 부반장 선거에서 아이들이 저를 후보로 추천하고 당선도 되고 임원이 되니까 선생님이랑 더 가까워지고 그래서인지 제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저에게 친절한 느낌이었어요. 계속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임원을 하는 게 당연했거든요. 

 

리더를 하니까 관계를 맺을 때 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관계에서 말하는 입장에 주로 있을 수 있었거든요. 말하는 입장이 편한 이유는  리더라는 위치가 주는 힘에 있었어요. 상대에게 잘 먹혔거든요. 하지만 듣는 입장에 있을 때는 여전히 힘이 들었습니다. 들을 때는 저 미로 속을 헤매고 다니게 되었으니까요. 상처 입은 어린 아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자기 세계를 만들어 문을 잠그고 있다가 리더라는 역할이 주는 무기가 있을 때만, 상대방이 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을 때만 빼꼼히 문을 열고 한 발짝 나와 뭐라뭐라 떠들고 다시 들어가버리는 거였습니다. 듣는 입장이 되어 미로 속을 해메고 다니게 되기 전에. 게다가 약한 자를 구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고는 방에서 잠깐 나와 정의의 사도까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리더 역할이 주는 편리함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인 관계를 맺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어요. 사람들이 제 능력을 인정하는 한 그런 관계를 그저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깊이 사귀는 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저에게 자신의 불만을 얘기하면 저는 이렇게 대응했거든요. "알았어. 니가 내 문제점을 얘기해주면 내가 다 고칠게." 그런 제가 친구들은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요. 새삼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리더 역할이 주는 편리함 이면에 이런 불편함이 있는데도 제가 끝까지 그 역할을 고수하게 된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학생 회장이었던 고3 때 교장 선생님의 횡포로 유기정학에 빠질 뻔한 학생 18명을 수업거부를 조직해 구했던 경험. 정의의 사도가 된 그 기분은 정말로 황홀했습니다. 일방통행식 관계 맺기가 주는 불편함을 다 녹여버릴 만큼. 일방통행 관계로도 그럭저럭 살아지기 시작하자 그림자 하나가 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방에 들어앉아 있다가도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덜덜 떨면서도 최소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소통하려는 노력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왠 간섭이냐" 짜증을 내면서 문도 열지 않는 거였습니다. 관계 맺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정의의 구원자라는 가면을 쓰고 나갔어요. 제가 일방통행인 걸 더 잘 감출 수 있었거든요. 그 가면을 쓰고 있으면 황홀하기도 했구요. 

 

리더 역을 놓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 역할에 중독되어버렸어요. 

 

시집살이를 하면서는 시어머님과 리더 역을 놓고 경쟁했어요. 가모장이 되는 방식을 통해 리더 역을 쟁취했습니다. 리더 역을 하는 동안 고통과 고난과 성취들이 모두 다 무용담이 되었어요. 듣지 않으려는 오만한 에고가 그 무용담을 늘어놓는 동안 상처 입은 내면아이는 점점 더 질식해가고 있었습니다. 리더 역을 놓지 않기 위해 모든 책임을 다 어깨에 지고 허덕거리며 끝없이 저 자신을 학대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가 맞이한 저의 모습은 왼쪽 폐에 구멍이 3개나 생긴 "혼자 애쓰는 사람." 수시로 외롭고 우울하고 허무했습니다.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활동이 강제 종료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어쩌다 인연이 되어 마스터 헤일로의 블로그를 타고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하나 저에게 적용해보면서요. 제가 갖고 있던 저 감정들이 모두 제가 쳐둔 피해자와 구원자 경계를 오가면서 생기는 것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절해졌습니다. 제 내면아이에게 다가가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일방적이지 않은 쌍방 소통을 하면서 자유롭게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배우자고. 

 

4바디 힐링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 또 졸업하고 현재 초보 힐러로  활동하면서 저는 내면에 있는 아이의 두려움을 계속 알아차리고 쓰다듬으면서 공간 밖에 어릴 때 설치된 미로들을 하나씩 부수고 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저 제 내면아이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할 때는 그래도 된다, 힘들어서 싫다고 할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서 가슴에 빛으로 호흡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지치지 않고 꾸준히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또한 30년 동안 리더 역할만 해온 친구를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로 만나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경계선 설정 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