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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내가 조르다니

둥그내 2020. 9. 21. 10:17
끝방에 살던, 내게 한참 오빠벌이던 두 형제는
무척이나 개구졌다.

내가 6살 무렵
그들은 나른한 휴일에 진력이 났던지
마당에 놀러오는 참새를 잡기로 모의한다.

참새가 자주 날아와 앉는 물가 근처에
실로 맨 나뭇가지로 대소쿠리 한쪽을 살짝 받쳐두고
그 안에 좁쌀을 슬슬 뿌려두고는
실 끝을 잡은 채 잠복에 들어갔다.

나는 참새가 속지 않기를 바랐지만
좁쌀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운 한 마리가
소쿠리 안으로 날아들어갔고
숨죽이고 있던 형제는 실을 냅다 잡아당겼다.

참새가 더 빨랐다.
날아갔다.
휴우...

몇 번 실패가 반복되는 동안 두 형제는
약이 오를대로 올랐다.
둘째는 포기하고 첫째는 눈이 벌개져서는
나의 툇마루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자
울엄니 플라스틱 쓰레빠를 집어들어
참새를 향해 냅다 던졌다.

그의 비명 섞인 환호.
믿을 수가 없었다.
쓰레빠에 맞은 참새가 그만..
그의 벌건 눈이 잊혀지지 않았다.

며칠 뒤 동네에 니아까를 끌고 나타난
도마도 장수가 “맛있는 찰도마도”를
구성지게 읊어댔다.

엄마에게 도마도 사달라 조르기 시작했는데
돈 없다고 몇 번 달래던 엄마가
결국 나의 집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그 쓰레빠로 내 머리통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엄마에게 뭘 조른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께 엄니랑 영상 통화를 하며
추석 때 재료 준비해 갈 테니
무말랭이랑 오이지를 무쳐달라
내가 무치면 엄마 손맛이 안 난다 졸랐다.
내년 90 되는 엄니에게 내가 조르다니..
통화를 마친 후 그런 내가 너무 낯설고 적응 안 되고
또...
반가웠다.

암튼 이번 추석엔
엄마손 무말랭이 오이지를 먹을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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