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My Way Home 집으로

몰라서 재밌다

불확실성을 가능성으로 본다, 뻗어나간다

둥그내의 삶

눈, 난로 그리고 엄니

둥그내 2020. 8. 21. 21:13

 

어릴 때 살던 종암동 산 밑 집은

겨울이면 웃풍이 제법 심해

방 안에 반드시 난로를 놓아야했다.

난로는 온기를 내는 심장이기도 했고

가래떡이며 밤이며 고구마를 올려 놓으면

노릇한 간식을 내어주는 엄니의 마음 같기도 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솜요에 솜이불을 목까지 덮고 누워 있는데

엄니가 창호지 문을 드륵 열고 연탄 한 장 들고 들어와

난로 불을 가셨다.

엄니가 연 문 밖으로 보이던 하얀 눈송이

엄니의 노고로 새 심장을 맞이하던 난로

뜨끈한 방바닥 위 솜요와 솜이불 속에서

목만 내어놓고 바라보던 풍경

차가운 겨울이어서 더 따뜻했다.

친구가 보내준 피아노 연주에 빗소리가 계속 들린다.

1인용 전기요 생각이 나서 바닥에 깔고

온도를 적당히 한 후 드러누워 보던 책을 계속 본다.

뜨끈한 바닥에 누워서 비를 맞는 묘하게 아늑한 기분

그 추운 겨울 엄니와 난로 생각이 절로 났다.

2020.5.15

 

'둥그내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말 사과  (0) 2020.08.21
가족으로 온 스승  (0) 2020.08.21
도반들에게  (0) 2020.08.21
꼭꼭 씹으면  (0) 2020.08.21
  (0)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