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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내의 삶

기도

둥그내 2020. 8. 21. 20:36

- 엄마, 수요일 갈게요

- 바쁜데 뭐 하러

- 바쁘긴? 코로나로 한가하지

- 그럼, 세째 언니랑 같이 와

세째 언니랑 같이 오라는 말에 딱 알아들었다.

엄니는 나와 단 둘이 있는 게 편치 않다는 걸.

엄니는 내게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아빠 일찍 돌아가셔서 고생시킨 거

내가 시집살이를 해서

다른 언니들 다 해준 해산간 못해준 거

막내 사위 생일상 한 번 못 차려 준 거

늘 되뇌이며 미안해하고

한글학원 반강제로 입학시켜

한글 공부 하게 해준 걸 늘 고마워한다.

그리고 그것이 엄니가 나로 인해 박은

엄니의 못이다.

대단한 자존심으로 엄니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그 과정에서 막내딸이 무엇을 경험했는가

미처 공감할 여유가 없었던 엄니로 인해

나도 내 속에 못이 있었다.

엄니의 못과 나의 못이 서로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결되어 있는 그런 느낌.

막내딸을 어려워하는 엄니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일단 내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가

처절하게 돌아봤다.

몸을 움직이며 눈물 콧물이 나오면

바닥에 흐르도록 그냥 두었다.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애도의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내 입에서 “너 참 장하다!”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몸에 박혀있던 못이 빠져나오던 순간.

그 후 엄니를 만난 어느 날

내 앞에서 내가 듣기 싫어하는 이의 얘기를

또 하는 엄니에게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하라 했다.

계속 하면 지금 이 자리에 더 이상 있지 않겠노라.

더 이상 엄마의 아킬레스건으로 있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이후 방문했을 때부터

엄니는 더 이상 그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막내딸의 다른 대응에

엄니가 번뇌하고 있을 동안 나는 삶을 누렸다.

코로나가 왔을 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누렸다.

기동성 있는 동무들 차를 얻어 타고

여기 저기 다녔다.

벚나무 아래 누워 꽃비를 맞았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삶이, 비로소.

내 생일 이브 엄니에게 갔다.

세째언니도 와주었다.

나는 엄니가 얼마나 위대한 여인인가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해

지금 여기에 이렇게 나를 존재하게 한

얼마나 대단한 여인인가 알려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 내 몸을 품고 낳아 길러주심에

깊이 감사한다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부디

이 막내딸의 변화가 엄니에게도 전해져

여생 동안 엄니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끊임없이 자신을 비판하고 꾸짖지 않게 되기를.

 

 

막내딸이 알려준 털기춤을

하루에 400번이나 해내는

막내딸에게 생일선물로 10여 년만에

5만 원을 찔러주신

이시덕 여사 화이팅~!!❤️

 

20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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