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엄마의 오만함과 사랑을 그대로 보다
시어머님과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은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92세 노모에게서
그녀의 사랑을 두텁게 싸고 있는 자부심의 벽을 보았다.
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들에게 할 말을 하고
크게 화를 내는 그들의 마음을 사과로 살살 풀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길들였다는 자부심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였다는 오만함
엄마의 행동에 대해 다른 반응을 하기로 선택한 건
엄마의 영역이 아니라 시어머님과 남편의 선택 영역이었다는 걸
절대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견고한 철옹성
돈을 주지 않았는데 내가 구멍가게에서 라면땅을 들고 왔을 때
이불 가위에 손목을 집어 넣어 자르겠다고 가르치지 않았으면
내가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못해 도둑이 되었을 거라는 신념을
엄마는 결코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상처 입었음을 알면서도 결코 사과하지 않았던 그 고집 속에
‘내가 자식 훈육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는
지독한 에고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공부하고 싶어 엄마가 구해 온 책을 외할아버지가
‘기집애가 공부는 해서 뭐하냐’며 불쏘시개로 집어던진 사건을
일자무식 자존심이 건드려질 때마다 신세한탄하듯 늘어놓던 엄마는
자신이 ‘당한’ 억울함에 휩싸인 채
외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저지른 폭력을 그대로
딸에게 저지른 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엄마가 내게 대물림해준 억울함의 실체와
무용담을 늘어놓는 나르시시스트 면모를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게 되기까지
대물림을 멈추겠다 뜻을 세우고
치유를 멈추지 않은 내 안의 신성에
깊이 감사할 수 있었던 명절
엄마의 오만함에 대해 감정 섞지 않고 한 마디 날렸다.
오직 엄마의 신성을 바라보면서.
엄마의 에고가 주춤거리며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화의 내용과 상관 없이 공간에 이내 평화가 찾아왔다.
헤어질 때 엄마와 포옹을 하고
엄마의 익숙한 사랑법
나박김치, 고추장아찌, 볶은 소금, 볶은 참깨, 참기름 한 병 등등
그건 또 그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싣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