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주고 받음의 조화

둥그내 2022. 12. 11. 13:15

지금 사는 곳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횡단보도에서 휴대폰 하나를 주웠고
폰 주인에게 연락이 와 다음 날 만나 돌려주었다.

어제 샤머닉 펑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함경도 제주도 등의 무가(巫歌)를 부르며
굿판을 축제로 해석해 공연장에서 액막이를 하고
복을 빌어주고 다니는 ‘추다혜 차지스’ 공연을 보고
귀가한 후 휴대폰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앳된 남자의 목소리가 묻는다.
“휴대폰 주인이세요?”

폰을 주운 이가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어
집에서 나간 지 몇 분만에 만날 수 있었다.
수능 친 지 얼마 안 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폰을 받아들고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 인사를 하니
그 두 사람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다.
받는 이도 주는 이도 허리 숙여 인사할 때 느낌이
묘하게 뭉클했다.

주고 받음의 조화가 깨진 삶을 참 오래 살아왔다 싶다.
주는 위치에만 있으려 할 때는 받는 위치를 불편해하여
받았을 때 그 마음에 채무자 의식이 또아리 튼다.
스스로 그 위치를 고수하다가 결국은 너무 힘들 때
자신을 희생자인양 느껴 억울해하는 패턴을 반복하여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게 뭔지 모른채 살아간다.

주고 받음의 조화를 조금씩 회복해가며
감사라는 걸 가슴으로 감각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평화를 불러옴을 경험해가고 있다.

내가 누군가의 폰을 찾아주기도 하고
누군가 내 폰을 찾아주기도 한다.
서로가 소통을 잃지 않도록
연결을 길을 잃지 않도록

추다혜 차지스 곡 영화 ‘사이에서’ OST 중에 나오는 가사 한 자락
마음에 담아 왔다.

계속 걷다보면 내가 설 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