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2022. 7. 25. 18:47

20대 중반 전노협에서 일하는 동안
뽀얀 담배 연기, 대의를 명분으로 한 무임금 노동과 그로 인한 별도의 생계 활동
그로인한 잦은 밤샘 작업으로 완전히 몸이 망가졌을 때
기천무라는 전통무예를 통해 몸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

수련 당시 내가신장이라는 기마자세를 기본으로 단전호흡을 익히고
다양한 자세의 동공(움직이는 수행)을 2년 정도 집중 수련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정좌 상태의 정공에 들어가도록 가이드 되었다.
워낙 몸 쓰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는 앉아 있기도 힘들고 앉아 있어봐야 잡생각이 그득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상당히 합리적인 수련법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당시 동공에 집중하던 시기를 지나 정공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갈등 상황과 감정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영국으로 도피했었던 것 같다.

내가 다루어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은 감정들은
어떤 기억에 달라붙은 채 잠재의식에 들어가 있다가
다른 인물들에게 배역을 맡기며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비슷한 스토리의 연극을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내가 그 핵심 감정을 알아줄 때까지.

동공을 통해 육체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단계를 지나 정공으로 들어가던 순간
수면 위로 올라오며 튀어나왔던 것들
그리고 당시 그걸 어찌 다룰지 몰라 도피하여 덮었던 것들
그것들을 힐링스쿨에 와서 차근차근 만나가며 통합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동공과 정공이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어우러지는 이 느낌이 즐겁고 재미지다.
오만가지 감정들을 만나가는 길이 쉽지는 않으니
간혹 지인들 중에는 그걸 굳이 꼭 딥따 파고 헤집어야하는가
골치 아프다는 시선을 던지는 이도 있다.
내가 나를 연구하는 길에 ‘해야 한다’가 작용한다면
잠시 멈추고 계속 할까말까 생각해보면 된다.
삶이, 선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즐겁고 재밌고 이거 말고 어디 딴 데서 재미를 느끼지는 않는 것 같으면
그 길을 그냥 계속 가게 되는 것일 뿐.

이자람의 ‘작창’을 또 보았다.
브레이트 작품 ‘어머니’를 ‘억척가’로 작창해
억척 어미와 군에 들어간 자식과 그 자식의 목을 친 군인의 역을 홀로 종횡무진 노래하고 연기한다.
어미의 한과 자식의 어미를 향한 마음까지야 그렇다치고
목을 친 군인의 잔인한 에너지를 순식간에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잔인함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적극 끌어안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감정 속에 들어있던 잔인함마저도 창이 끝날 때는 묘하게 따뜻함으로 어울어지는 그 느낌은
아마도 그녀의 공감과 연민이지 싶다.

투명한 상태로 그저 그때 필요한 어떤 에너지를 통로로서 표현하는 것
힐러든 무인이든 예술가든 누구든
그 가는 길이 다르지 않다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