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올해 발견한 나의 그림자 그리고 빛

둥그내 2021. 12. 18. 18:30

오랜 세월 관계의 삼각화 속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한 것으로 둔갑하고 
양쪽에서는 나에게 서로 피해자라 호소하며 위로를 구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짐을 떠맡기는 거지같은 일이 벌어지고 
나는 그 과정에서 억울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 속으로 나를 끝없이 밀어넣은 것이 

스스로 보호자를 자처하며 그 위치성이 주는 자부심을 놓치 않은 나 자신임을 알아차린 게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이다. 

잘 돌아가지 않는 가정에서 온 가족들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성장한 아이의 비극이다.

그들의 감정을 흡수한 채 해결하려고 버둥거리며 애어른으로 생존해온 아이의 비극 

나를 충분히 연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삼각 구도에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는 힘이 제법 자랐다. 

며칠 전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끔찍한 방식의 시험이 펼쳐졌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이가 나의 질투를 자극하기 위해 나한테 똥을 투척했다. 

내가 요동하질 않으니 점점 더 자극의 강도를 높여가며 나중엔 심지어 피해자인척. 

너무도 익숙한 패턴..

수작질이 뻔히 보이길래 니들이 싼 똥은 니들이 치우라고 고스란히 다시 양쪽에 투척해버렸다. 

삼각관계에 빠지지 않은채 홀로 있기에 성공한 것. 
그러고나니 시원하다가 분노와 서글픔..뭐 그런 감정이 밀려와 한참을 통곡했다.

문제를 직접 대면할 용기를 내지 못한 자의 우유부단함과 미련이

내가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를 타인을 통해 쓰리쿠션으로 무참하게 파괴했던

대학 시절의 어떤 기억이 소환되었다. 

D-day였던 90년 10월 어느 날 

열이 펄펄 나고 몸이 아픈데도 집구석 어디 한 점 아프다 드러누울 곳이 없어 

그 날 하기로 되어있던 과외를 3탕 다 뛰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던 21살 소녀가

가슴에 깊이 파묻어 냉동시켜두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이 다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30분 실컷 울고 나니 다시 평화로운 느낌..

그들의 에고가 투명하게 보이고 그 에고를 알아차리는 나의 에고도 투명하게 보이고 

그 모든 것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마지막 한 점 남아있던 환상이 무참하게 깨져나간 자리에 어떤 실상이 맑게 서 있었다. 
그 정도 사건은 겪어줘야 정신을 차릴만큼 보호자라는 역할에 대한 나의 집착은

그 역할에서 생겨난 나의 에고, 자부심은 어마무시하게 진상이었겠지.

그리고 그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였을 때 뭔가 툭 끊어지면서

그만큼의 힘으로 모두를 연민하는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에고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에고 자체를 집단 의식으로, 개인의 것이 아닌 집단의 것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지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어렴풋이 알아졌다. 


어느 쪽에도 죄책감 수치심 같은 원죄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현실 세계에 또 다시 펼쳐 굳이 또 다시 경험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내 의식 안에서 해결하고 싶어서 정신적 피해보상을 물질로 요구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벌어진 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 위태로운 '신뢰'라는 감정을 다만 한 오라기만큼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까. 

 

4바디 힐링 스쿨 교재의 경계선 설정 챕터에

부정적 측면의 관계의 삼각화 바로 다음 긍적적 측면의 삼각화가 언급되어 있다. 
고3 때 아이들이 교장에게 당한 피해를 듣고 여학생 회장 신분으로 교장과의 사이에 끼어 

결국 전교생과 교장의 토론을 이끌어내고 18명의 정학을 막아냈던 것에서 삼각화의 긍정성을 본다.

사회적 직업으로는 변호사가 떠오르고 에세네 공동체에서는 윤리위원회가 떠오르고. 

힐러 역할에서도 보인다. 


세상에는 쌍방 사이에 들어가 중재 역할을 하는 다양한 얼굴의 힐러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신성과 에고가 맞서고 있을 때 신성과 에고 사이에 들어서서 신성에 빛을 비춰주는 힐러 

피고와 법 사이에 서서 피고의 무고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빛을 비춰주는

드라마 '어느 날' 신중한 변호사 같은 힐러 

인질범이나 자살극을 벌이는 이들과 법 사이에 서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상을 벌이는 경찰 같은 힐러 

그리고 그 다양한 모습의 힐러들조차 각자 자신의 여정을 가고 있음을 계속 확인하게 된다. 

신중한 변호사를 괴롭히는 아토피와 경찰의 눈물에서.. 

 

평생을 처음엔 타의로 삼각화에 끼일 수 밖에 없었고 나중엔 자의로 끼어들어

스스로 온갖 수모를 겪도록 자초한 내 삶에 잉태된 그림자 그리고 빛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지금의 내게는 자명하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여 자산으로 만들어가기로 선택한다. 

나의 그림자를 길들여 빛이 드러나게 하기로 선택한다. 그러다보면 

언제 어떻게 개입하고 언제 개입하지 않을 것인지가 점점 자명해질 것이다. 

치유해낼 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어떤 얼굴의 힐러인지가. 

 

오늘 축복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