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2021. 10. 23. 09:05

 

 

 

 

 

 

 

 

30년 전 처음 만난 화순 운주사는
소복히 내린 눈에 하얗게 덮여 있었다.
TK정권 연이어 지역발전불균형이 있어 그랬는지
주변에 먹을 곳은 없고 배는 너무 고파
절 입구 경비실 같은 곳 문을 열고
난로가에 앉아 계신 아저씨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아저씨, 저 여기서 라면 좀 끓여먹어도 될까요?
배가 고파서요.”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시길래
코펠에 쌓인 눈을 푸욱 떠다가 버너에 불 켜서
라면 끓여 같이 먹고나서야 절 안으로 들어갔었다.

두어 달 전부터 그렇게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이번에 다시 가 둘러보며
그곳이 왜 그리 좋았었나 알 수 있었다.

절이 심각하지 않다.
부처도 심각하지 않다.
탑도 심각하지 않다.
요리조리 다니는 과정 자체가 놀이 같았다.

어릴 때 뒷산에서 친구랑 놀다
별안간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기어들어갔던
두꺼비 바위 같은 곳에 부처들이 나래비로 있었다.

사람 몸이 참 신기해서 108배 하고 돌아댕기니
이제는 절을 할 때 쓰는 근육들이
마치 불수의근인냥 저절로 움직이는 지경인데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108배 마치고 속에서
“아우, 걍 놀아~~”하는 소리가 들리던 차였다.

걍 그러고 놀다가 어딘가 다쳐 상처가 생기고 아프거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오늘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나에게 줍니다”
내가 나에게 해주면 또 좀 힘이 생긴다고
가슴에 두 손을 모은 채 거기 오랜 세월 비바람 맞으며 지내온
비로자나불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