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호칭에 예민했던 이유

둥그내 2021. 5. 29. 14:27

강희, 강희 씨, 강희 님, 이강희 씨, 이강희 님..

헤일로 님이 나를 부를 때의 호칭들이다. 

이 호칭들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어제는 이 호칭들에 예민하게 촉을 세우는 나를 온종일 들여다보았다. 

헤일로 님과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함께 한 1세대 힐러들이 대부분 그 이름만으로 불리우고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그런 상황에 부러움을 느끼는 묘한 상태까지 포함하여.

 

처음 이 공동체에 왔을 때 나의 내면은 얼마나 연약한 상태에 있었는가. 

헤일로 님의 블로그를 완독하고 힐러가 되기 위해 제대로 배우겠다 결심하고 들어왔지만 

이 공동체가 과연 안전한지 계속 점검하고 있었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었다가 또 상처를 입을까 겁이 났었기 때문. 

그런 나의 상태를, 나의 에너지 상태를 헤일로 님이 당연히 느꼈겠지. 

 

소설팀, 유툽팀 등 좀 더 가까이서 함께 일을 할 기회들이 우연찮게 주어졌고 

헤일로 님은 그런 나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때는 '강희'로 주로 불리었다. 

 

졸업 후 힐러가 되고 나의 구원자 컴플렉스가 부른 어떤 사건을 통과하면서 

나는 강희 씨가 되고 이강희 씨가 되고 강희 님이 되었다. 

치유의 봄날이 가고 뜨겁게 담글질을 하는 여름이 찾아온 것. 

 

내 에고의 구조를 파악하며 계속 셀프 치유를 해나갔다. 

1:1 세션의 기회도 가로막힌 상황이라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없었다. 

4개월 정도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나는 내 안에 힘을 키웠다. 

호칭에 대한 나의 예민함을 어제 들여다보면서 이제 이 이슈를 들여다볼 힘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동안 내가 맺어온 여러 종류의 인간 관계가 있다. 

그 중 커다란 축 하나가 '언니-동생' 사이였다. 

어린 시절 내게 언니라는 존재는 다양한 감정을 학습시켰다. 

두려움, 소외감, 상실감, 외로움, 공포, 불안, 원망, 책임감, 답답함,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감사 등등 

 

내게 동생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에게 나는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언니 역할을 수행하며 

구원자 컴플렉스에 빠졌고 

내게 언니로 다가오는 존재들에게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갈구하며

그 친밀한 감정과 애착 상태에 빠졌다. 

 

미술을 하는 대학 선배가 다가와 피나 바우쉬에 함께 푹 빠졌던 순간 

노래 운동을 했던 선배가 다가와 자신이 입던 옷가지를 주고 또 찌개를 끓여주던 순간 

나는 그들이 내게 바라던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그들의 경계를 넘어선 걱정이 갑갑했을 때 저항했다. 

그리고 관계는 깨졌다. 

 

시집살이에 고단하던 시절 

"같이 산에 가자~" 청했던 대학 선배를 따라 

수락산 야간 산행을 시작으로 온갖 산을 타고 설악산 공룡능선을 두 번이나 넘고 

승마를 하러 다니고 몽골에서 말을 달리겠다는 꿈을 꾸고 

커플 댄스를 함께 하러 다니다가 

어떤 경계를 넘어선다고 느낀 순간 갑갑하여 또 저항을 했고 관계는 깨졌다. 

 

어떤 중학교에 움직임으로 하는 공감수업을 하러 가기 위해 

학교에서 요구하는 채용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폐결핵 아니면 폐암 진단을 받았던 날 나의 절망을 전해들은 C 선생님이  

"이 언니 열받았어! 내가 그냥 안 둘 거야" 답을 보내고 

폐에 좋다는 초록색 약 한 병을 건네주었을 때 그녀의 꿈은 나의 꿈이 되었다. 

신기술을 장착한 그녀의 새로운 '능력자 동생'이 나타나 

내 이름을 능력자 동생 이름과 헷갈리고 심지어 

내가 한 번역조차 동생이 한 것으로 말해버리는 일이 생기면서 

나는 서서히 관계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이 징글징글한 패턴! 

 

헤일로 님의 호칭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의 감정은 

갈구하던 언니의 사랑이 주어졌을 때 느끼는 그 친밀감에 대한 '애착'이다. 

강희 씨, 강희 님, 이강희 씨, 이강희 님이 아니라 '강희'라는 친근한 호칭으로만 불리고 싶은 것.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누구와 사랑에 빠지느냐에 따라 휙휙 바뀌는 그녀에게 그녀의 친구가 말한다.

"너 걔랑 사귀더니 옷도 걔처럼 입는구나."

그녀는 자신이 그런다는 것도 몰랐다. 

자신이 계란 완숙을 좋아하는데 자신의 파트너 입맛에 따라 반숙을 좋아하는 줄 착각하고 살았던 

다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언니라고 여겨지는 존재에 대한 나의 이 애착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나는 나 자신에게 준엄하게 물었다. 

 

"치유에 대한 나의 열정은 나의 것인가 그녀로부터 온 것인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본성의 목소리. 

 

"나는 이제 나를 치유하여 이 애착을 내려놓고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오늘 내게 필요한 모든 사랑을 나에게 줍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에게 줍니다."

 

이 확언을 하자 나의 애착으로 당겨졌던 그 인연들이 

지금 나를 이 길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내가 그때 경험한 것들이 내 안에 어떻게 쌓여 빛나고 있는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내가 신성의 계획을 어찌 알겠는가. 

기도하되 내 에고가 띄우는 기대를 내려놓고 오직 매 순간 선택하고 책임지며 걷고 또 걸을 뿐. 

 

지금까지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나의 본성, 신성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신 인연들의 본성, 신성에 

깊이 감사합니다. 

 

PS. 

이 글을 마치고 오늘 아침 셀프 자궁치유법 공유한 힐러톡방에 알림 떠서 들어가보니 

헤일로 님의 톡 "강희 글 보니 이 음악 생각나네" 

 

 

아놔, 진짜..
내가 이 맛에 치유함 ㅋㅋ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무섭고도 짜릿한 치유 이야기. 
냐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