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아들이 보여준 내 안의 아이에게

둥그내 2021. 4. 25. 15:49

제 아들은 어려서 자폐시절을 보냈습니다. 요즘 힐링스쿨에서 배운대로 제 에고의 구조를 더듬어 가면서 아들과의 경험이 다르게 해석되고 있어요. 정리를 해보고 싶어서 그 시절을 소환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가 17개월 되던 무렵이에요. 집에 시어머님과 시누이가 있으니 아이를 돌봐주시겠거니 하고  장사를 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엄마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동화책을 읽어달라 조르던 딸아이에게는 새벽 두 시 경 귀가해 아이가 잠들 때까지 졸면서도 동화책을 읽어주었지만 아들은 그 시간이면 이미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어요.

아들이 30개월이 되던 무렵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겨 모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엄마라 부르지도 않고 이상한 소리를 가끔씩 내며 그냥 비디오만 계속 보기를 원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통을 시도해보았지만 아이랑 만나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기 세상으로 들어가 문을 굳건하게 걸어잠갔다는 느낌.. 눈 앞이 캄캄했어요. 태어나서 불면이란 걸 알게 된 게 그때가 두 번째 같아요.

소통을 단절한 아이와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어요. 어느덧 자라 군대까지 다녀온 아이는 조금 특이하지만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고양이와 잘 놀아주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아이와 동반한 이 경험이 저에게 무엇을 알게 해주었을까요? 제 에고를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오랜 시간 저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다시 불러낸 구원자로 제 자신을 인식했고 그런 설정이 제 자부심에 엄청난 토양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이런 어려운 아이도 키워낸 그런 엄마야!" 이 자부심 밑에는 아이를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시어머님과 시누이에 대한 원망도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돈을 버느라 어쩔 수가 없었고, 당신들은 내가 돈 버는 동안 도대체 뭘 한 것이냐라는 원망. 교재에서 글자로만 보던 '가모장'이 제 삶에서 실체를 드러내고 그 실체에는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비겁한 제가 있더군요.

가슴을 닫고 감정을 냉각시켜야만 그나마 살아갈 수 있었던 제 어린 시절을 제가 스스로 어루만져주기 전에는 그런 제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상처 입은 상태에서는 다 내 책임이라는 말이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거든요. 사는 게 힘이 드니 나름 논어에 명리에 마음 공부도 좀 해보고 춤도 열심히 췄지만 여전히 일체유심조니 하는 말을 들으면 참 고상하고 품격있고 좋은데 속에서는 천불이 났죠. '이 고난이 다 내 탓이라니요!'

힐링스쿨 와서 제가 억울해 하는 제 내면아이에게 스스로 편을 들어주고 달래고 사랑을 불어넣으면서 조금 힘을 회복하자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제 자신이.

언제까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건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 매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에고가 무엇을 하는지 눈치를 챘어요. 세상과 소통하는 척 하는 것. 내 안에 여전히 세상에 나오지 않고 문을 걸어잠근 공감불능의 자폐아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지금까지 살아낸 경험들을 나의 자부심과 원망으로 분류해두고 그 이분법을 절대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해요. 소통인 것 같지만 일방통행인 대화.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이 먹힐 때까지는 그럭저럭 살다가 그 기술이 먹히지 않을 때마다 들통나버리는 건 늘 혼자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였어요.

제 안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걸 아들이 보여준 거에요. 아들과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제가 느꼈던 그 슬픔과 고통이 바로 제 안에 있는 그 아이와 제가 소통하지 않을 때 제 본성, 신성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구한 게 아니라 제가 아이를 통해 저를 구하는 길을 만난 거였어요. 오직 아이가 안전할 수 있도록 1미터 정도 떨어져서 열심히 아이 뒤를 따라다니는 제게 아이는 분노하고 울고 떼를 쓰고 차도로 뛰어들면서 제 내면아이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던 거에요. 감사한 우리 아들 스승님..

오늘은 아이와 홍콩으로 첫 해외여행 갔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공항의 엘리베이터를 못탔어요. 아이에게 고소공포가 있었고 온통 투명한 공항 엘리베이터는 아이에게 너무 궁금해 미치겠는 미지의 세계이면서도 그림의 떡이었겠죠. 출국 수속을 하기 전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그 꿈을 바라만 보고 있던 아이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생각이 납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는 두려움에 쌓이기 시작했어요. 어둡고 좁은 통로와 공간이 아이의 폐소공포를 건드렸던 거 같아요. "엄마 나 홍콩 안 갈래요"를 높낮이 없는 톤으로 계속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좌석에 앉히고 계속 쓰다듬었어요.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하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커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잡아먹는 비행기 엔진 소리가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30분 넘게 울다가 지친 아이는 제 무릎을 배고 한 시간 정도 잠을 잤어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의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아이의 얼굴에서 평온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일어나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하더니 비행기 화장실에 꽂혀서 자꾸만 물을 내리고 쒜액 물빠지는 모습과 소리를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 아이의 호기심을 견뎌주신 승무원들, 승객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홍콩에서도 동그랗고 투명한 공모양의 케이블카를 너끈히 타는 아이를 보며 귀국 후 공항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아이가 어떻게 할지 궁금해지더군요. 공항에 도착한 아이는 20분 넘게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개선 장군처럼.

두려움을 온전히 느끼고 내려놓은 후 비행기며 케이블카며 엘레베이터를 즐기던 아이의 모습이 오늘 떠오르는 건 지금 제가 그 과정 중에 있어서인 거 같습니다. 저두 아이처럼 울고 불며 두려움을 마음껏 표현한 후 한 숨 푹 자고 나니 날아갈 것 같거든요.

비행기 이륙 후에 울며 내리겠다던 아이에게 해줬던 말을 이제 제 내면의 아이에게 들려줍니다.

"이건 버스가 아니라서 홍콩에 갈 때까지 내릴 수가 없어. 엄마랑 같이 가보자. 엄마가 옆에 있을게. 꼭 붙어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