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 치유&성장 일기

왜 둥그내일까 2

둥그내 2021. 1. 23. 10:41

2013년 12월의 일기 중에서

< 우리 동네 그네귀신 이야기 >

I sometimes swing at night. While swinging, I listen to music.
It is so fun!
Night air is cool and fresh.
I don't know why but swinging at night is more exciting than in the afternoon.
Maybe it's because I don' t have to care about what people think about me swinging during the night.

ㅡ 12월24일 H의 일기 ㅡ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17개월부터 한 1년 반 동안 나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H는
그 멀쩡하던 아이가 자폐아의 10가지 특징 중 9가지를 지닌 아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이었다.
천둥번개가 밤새 뒤흔들어도 쿨쿨 숙면을 하던 내가 불면이라는 걸 알게 된 게.
내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일단 좀 더 안전한 주거환경으로 이사를 했다.
날마다 아이가 맘껏 돌아다닐 수 있게 두고 나는 뒤만 졸졸 쫓아 다니다가
차도로 뛰어든다거나 하는 위험한 상황에서만 등장했다.

엘리베이터에 엄청난 집착을 보여서 하루에 4시간 동안
여기저기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섭렵하고 나면
나는 속이 울렁거려 얼굴이 노래지곤 했지만 아이는 뭔지 모를 연구를 하느라 지칠 줄 몰랐다.
나중엔 엘리베이터에 마이너스 개념을 도입해 지하 1층은 -1 지하 2층은 -2 가 되기도 했다.

소리에도 민감했다.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 시그널 음악 땅땅땅땅땅~ 만 들리면 밥 먹다가도 TV로 달려가고
엘리베이터 열고 닫힐 때마다 나는 소리를 으응~ 하고 흉내내기도 하길래
형님들께 은근한 압박(?)을 가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디지털건반을 안겨줬더니
하루에 8시간을 갖고 놀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와 '통'하는 느낌이 없었고 폐소 고소 공포증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서서히 나아지다 급격히 좋아진 건 함께 여행을 하면서부터.

어느 때부터인가 동네 놀이터 그네 타는 걸 무척 즐기더니
어느 날인가는 없던 복근까지 슬쩍 보일 정도였다.
일명 '그네복근' ㅎㅎ

중학생이 되더니 코흘리개 아이들과 그네 경쟁을 벌여야하는 게 싫다면서
해가 좀 지고 나면 나가서 타던 걸 이제는 아예 새까만 밤에 탄다.

영하7도인 밤에도 그네를 탄다.

자폐증을 이겨내고 동물학자가 된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함께 보았다.
영화에서 템플이 이렇게 말한다.

"그네를 타면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것 같애요"

아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거야?"

현우가 씨익 미소를 보내며 내 손을 꼬옥 잡고 뽀뽀를 쪽 한다.

우리 '통' 했다.

•••••••••••••••••••••••

속으로 참기만 하다가 결국 소통을 끊고 자기 세계로 깊이 들어가버렸던
우리 H가 바로 저를 비추어준 거울이에요.
아이와 소통하고 싶은 간절함이 나 자신과 소통하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걸
아이가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나의 아이로 태어나 나를 힐러의 길로 안내한 스승
우리 H가 바로 ‘그네’ 귀신입니다.
그래서 둥그내이기도 해요.

둥근 해, 그네 그리고 둥그내

 

PS.
페친이신 김홍샘이 축하 선물을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둥)실둥실 햇님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지만 

(내) 안의 나도 일깨워주는 고마운 햇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