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내의 삶

시 한 편 - 풍장

둥그내 2020. 12. 6. 12:43

[ 풍장 ]

바람이 허공에 새겨놓은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리라
살이었던 욕심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신의 발을 무사히 만질 수 있도록
영혼에서 살이 빠져나가는 시간
바람의 지문을 영혼에 새기는 일이다
넘치던 말들과 형상을 보내고
허공에 섬세하게 깃들게 되리라
몸 전체가 꽃잎처럼 얇은 고막이 되어
지평선에 누우면
별들의 발소리가 들리겠지
살을 버린 이성은 비로소 세계를 흐느낄 것이고
혀가 된 푸른 바람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에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시집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중에서)

페친 김주대님 담벼락에서